270마일에 15만달러, 반년 만에 멈춘 전기 캠퍼밴의 시계

코치맨 RVEX 전기 캠퍼밴

270마일 주행거리에 15만달러대 가격표. 작년 가을 코치맨(Coachmen)이 예고한 전기 캠퍼밴 RVEX는 딱 이 두 숫자만으로도 업계의 시선을 끌었다. 배기가스도, 주유소도 필요 없는 클래스B라는 조합은 그 자체로 화제였다. 하지만 공개 반년도 지나지 않아 이 프로젝트는 무기한 보류 상태로 넘어갔다. 이유는 코치맨의 잘못이 아니었다. 차체를 대던 회사가 통째로 발을 뺐기 때문이다.

작년 9월, 영상 한 편으로 시작된 기대

코치맨은 작년 9월 티저 영상과 함께 RVEX를 처음 공개했다. 쉐보레의 전기 상용 플랫폼 브라이트드롭(BrightDrop)을 기반으로 한 클래스B 캠퍼밴으로, 완충 시 약 270마일을 달릴 수 있다고 밝혔다. 지붕에는 1000W급 태양광 패널을 얹었고, 구동용 배터리와는 별도로 리튬 하우스 배터리 뱅크를 갖춰 차량 동력과 생활 전력을 분리했다. 예상 가격은 약 15만달러. 클래스B 시장에서 10만달러부터 20만달러를 넘나드는 기존 모델들과 비교하면 합리적인 축에 속하는 숫자였다. 판매 시작 시점은 2026년으로 예고됐고, 실제로 코치맨은 사전 주문까지 받기 시작했다. 실내 구성도 클래스B치고는 과감했다. 소파를 접으면 킹사이즈 침대로 바뀌는 파워 소파를 넣었고, 구동 배터리와 별개인 리튬 하우스 배터리 뱅크 덕분에 엔진 시동 없이도 냉장고와 에어컨을 오래 돌릴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배기가스와 소음이 없다는 특성상 국립공원 캠핑장이나 도심 한복판에서도 이웃을 신경 쓰지 않고 머물 수 있다는 점이 잠재 구매층에게 매력으로 다가갔다.

한 달 뒤, GM이 발판을 걷어찼다

그러나 공개 한 달 뒤인 작년 10월, 제너럴모터스는 브라이트드롭 프로그램 자체를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판매 부진과 전기차 시장 흐름의 변화, 비용 상승이 이유로 꼽혔다. 포드의 E-트랜짓, 리비안의 상용 밴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브라이트드롭의 장기적인 사업성이 흔들렸다는 분석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들조차 이 결정에 놀랐다는 반응이었고, 코치맨 경영진 역시 사전 통보를 받지 못한 채 소식을 접한 것으로 전해졌다. RVEX가 딛고 서 있던 차대 자체가 사라진 셈이다.

브라이트드롭은 원래 쉐보레가 배달 업계를 겨냥해 내놓은 전기 상용 밴 플랫폼이었다. 초기에는 페덱스 같은 물류 업체들이 시범 도입하며 주목받았지만, 기대만큼 판매가 따라주지 않았다. RVEX는 이 저렴한 상용 플랫폼을 가져다 캠핑용으로 개조하는 방식이었기에 가격 경쟁력을 낼 수 있었는데, 정작 그 저렴함의 근거였던 플랫폼이 통째로 단종된 셈이다.

이미 주문을 받던 차, 결국 보류됐다

업계 매체 RV뉴스(RV News)가 지난주 이 소식을 처음 보도했다. 코치맨은 RVEX 프로젝트를 취소한 것이 아니라 무기한 보류한다는 입장이다. 새로운 전기 차대 공급사를 찾으면 프로젝트를 되살릴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뒀다. 문제는 코치맨이 이미 주문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준수한 주행거리를 갖춘 전기 RV에 대한 수요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뜻이지만, 지금 당장은 그 수요를 채울 방법이 없다.

전기 RV 시장 전체가 맞은 겨울

RVEX가 예정대로 나왔더라도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작년 가을 전기차 세액공제가 종료되면서 구매가 일시적으로 몰렸다가 이후 수요가 급격히 꺾이는 흐름이 나타났다. 시장 예측 기관 다수는 2026년을 전기차 출하량이 사상 처음으로 전년보다 줄어드는 해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RVEX와 비슷한 체급의 전기 RV들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버티고 있다. 엔테그라코치의 앰바크(Embark)는 순수 전기 주행 105마일에 가솔린 레인지 익스텐더를 더해 최대 450마일까지 늘리는 방식을 택했고 가격은 30만달러에서 45만달러 선으로 알려졌다. 위네바고의 eRV2는 포드 E-트랜짓 기반 프로토타입으로 완전 전기 구동을 실현했지만 여전히 시제품 단계에 머물러 있고 공식 가격도 나오지 않았다. 15만달러대에 270마일이라는 RVEX의 조합이 왜 유독 아쉬움을 남기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모터홈이 아닌 트레일러 쪽에서도 전기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라이트십(Lightship)의 AE.1은 견인차에 부담을 덜기 위해 트레일러 자체에 전동 구동 장치를 달아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공기저항을 줄인 유선형 차체와 독립적인 전력 관리 시스템을 갖춰, 적은 에너지로도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혼다는 CR-V 같은 준중형 SUV로도 끌 수 있는 약 1400파운드급 초경량 트레일러 콘셉트 베이스 스테이션(Base Station)을 선보였다. 태양광 패널과 리튬 배터리, 인버터를 기본으로 갖추고 앱으로 제어하는 구조여서, RV 입문 장벽을 낮추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기 RV의 숨은 장벽, 충전 인프라

RVEX 같은 전기 캠퍼밴이 실제로 도로에 나왔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충전 인프라다. 트레일러를 끌거나 무거운 짐을 실은 상태에서는 주행거리가 최대 30~50퍼센트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캠핑장 사정도 녹록지 않다. 한 통계에 따르면 조사 대상 RV파크 가운데 사이트에서 직접 충전을 허용하는 곳은 15퍼센트, 별도의 전용 충전소를 갖춘 곳은 46퍼센트에 그쳤고, 나머지 39퍼센트는 충전 자체를 금지하고 있었다. 전기 용량 부족이나 충전기 손상 우려를 이유로 꼽은 곳이 절반을 넘었다. 급속충전소를 찾아가더라도 트레일러를 단 채로 진입하기 애매한 구조가 많아, 전기 RV 여행자는 경로를 짤 때부터 일반 전기차 운전자보다 훨씬 더 많은 변수를 계산해야 한다. 충전기 위치, 대기 시간, 우회 경로까지 모두 감안한 여유 있는 일정을 짜야 한다는 뜻이다.

완성차 업체의 다음 도전을 기다리며

코치맨의 모회사는 포레스트리버(Forest River)다. 대형 제조사가 이 시장에 다시 손을 뻗을 만한 체력은 충분하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이번 사례가 보여주듯 전기 RV의 성패는 차량 제조사의 역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차대를 대는 완성차 업체의 전략, 정책 지원 여부, 배터리 공급망까지 여러 변수가 한 지점에서 맞물려야 한다. RVEX라는 이름의 차량은 당분간 도로 위에서 볼 수 없겠지만, 15만달러대에 270마일이라는 조합을 원하는 수요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도전자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가 관건이다.

당장 전기 RV를 알아보던 사람이라면 선택지는 두 갈래로 좁혀진다. 완전 전기 구동을 고집한다면 여전히 시제품 단계인 모델을 기다리거나, 순수 주행거리가 짧은 대신 레인지 익스텐더로 보완하는 고가 모델을 감수해야 한다. 반대로 지금 당장 도로 위를 달릴 차가 필요하다면 기존 가솔린이나 디젤 클래스B로 눈을 돌리는 수밖에 없다. RVEX가 보여준 15만달러대라는 가격선이 다시 등장하기 전까지는, 전기 RV는 여전히 소수의 얼리어답터를 위한 선택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사진 출처: Coachmen RV, via RV.com (https://www.rv.com/rv/the-coachmen-rvex-electric-camper-van-is-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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