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스휠은 아예 못 올라간다, 파익스피크 하이웨이가 그어놓은 24피트의 선

파익스피크 하이웨이 겨울 산길

콜로라도 파익스피크 하이웨이는 포장도로다. 2011년 마지막 비포장 구간까지 아스팔트로 덮이면서 도로 자체의 난이도는 예전보다 훨씬 낮아졌다. 하지만 RV 여행자에게는 여전히 넘기 힘든 선이 하나 그어져 있다. 도로 상태가 아니라 규정이 만든 선이다. 핍스휠(fifth wheel)이든 트래블 트레일러든, 견인식 트레일러라면 크기와 상관없이 이 길에 아예 올라갈 수 없다.

견인 트레일러는 무조건 금지

콜로라도스프링스 시가 관리하는 공식 규정에는 예외가 없다. “크기와 무관하게 견인식 트레일러와 캠퍼는 금지한다. 자전거 트레일러와 오토바이 트레일러도 포함된다.” 문장 그대로다. 트래블 트레일러는 물론 핍스휠(fifth wheel)도, 아무리 작은 팝업 트레일러도 이 도로에는 올라갈 수 없다. ATV와 오프로드차량, 정해진 기준에 못 미치는 모페드와 스쿠터도 함께 금지 목록에 올라 있다. 트레일러를 달고 온 여행자라면 산 아래 어딘가에 트레일러를 떼어놓고 견인 차량이나 별도 차량으로만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다.

버스·RV는 24피트, 축거는 19피트

트레일러가 없는 모터홈이나 대형 차량도 자유롭지는 않다. 버스와 RV는 축거(휠베이스)가 19피트, 인치로는 228인치를 넘을 수 없고 전체 길이는 24피트를 넘길 수 없다. 대형 클래스A 모터홈 다수가 30피트를 훌쩍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도로에 올라갈 수 있는 RV는 사실상 콤팩트한 클래스B나 소형 클래스C 정도로 좁혀진다. 21인승 미만 버스는 일반 유압 브레이크로도 운행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반드시 에어브레이크와 충분한 리타더 또는 엔진브레이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상업용 코치나 전세버스 대부분은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운행이 사실상 어렵다는 안내도 붙어 있다. 21인승을 넘는 버스를 운행하려는 기사는 크기에 맞는 상업운전면허(CDL)를 반드시 소지해야 하고, 타주 등록 차량이나 운전자는 방문 최소 14일 전 서면으로 파익스피크 관리소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고산 산악도로 운전 경험이 있는 기사를 권장한다는 문구도 규정에 명시돼 있다.

기어를 ‘L’에 놓지 않으면 시작도 못 한다

가장 눈에 띄는 조건은 변속기다. 자동변속기 차량은 기어 레버에 “1” 또는 “L” 표시가 있어야 통행이 허용된다. 하이브리드 차량은 “B” 표시로 대체할 수 있다. 만약 레버에 “S”나 “M”만 표시돼 있다면, 그 모드로 1단에 완전히 고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구에서 직접 증명해야 한다. 내리막에서 브레이크에만 의존하지 말고 저단 기어로 엔진브레이크를 걸라는 요구를 아예 입산 조건으로 못박아 둔 셈이다. 해발 14115피트까지 오르내리는 19마일 구간에서 브레이크 과열은 실제로 반복돼온 사고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 도로가 가진 또 다른 정체성은 경주장이다. 1916년부터 매년 열리는 파익스피크 국제 힐클라임(Pikes Peak International Hillclimb)이 바로 이 19마일 구간에서 벌어진다. 2011년 전 구간이 포장되면서 이 대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대회는 이후에도 매년 예정대로 열리고 있다. 자전거 부문 힐클라임 대회도 별도로 있어, 도로 자체가 일반 관광객뿐 아니라 레이서들에게도 익숙한 무대다.

일반 승용차와 트럭은 어떨까

트레일러가 없는 일반 승용차나 픽업트럭은 조건이 한결 단순하다. 자동변속기 차량은 앞서 말한 대로 레버에 “1”이나 “L” 표시가 있어야 하고, 그 외 별도의 길이·무게 제한은 명시돼 있지 않다. 50cc 또는 4476와트를 넘는 배기량의 스쿠터는 오토바이 규정을 따르면 통행이 가능하지만, 차량 등록과 보험 증명서를 갖춰야 한다. 그 기준에 못 미치는 소형 모페드나 스쿠터, 스케이트보드와 롱보드는 처음부터 금지 목록에 있다. 즉 트레일러 없이 캠퍼밴이나 소형 클래스B로 오르는 여행자, 혹은 견인 트럭만 따로 몰고 올라가려는 여행자에게는 이 도로가 상대적으로 열려 있는 편이다.

19마일, 14115피트까지

파익스피크 하이웨이는 캐스케이드에서 시작해 정상까지 19마일을 오르는 유료 도로다. 1915년 스펜서 펜로즈가 자금을 대 건설했고, 그전에는 1888년에 놓인 마차길이 있었다. 1998년 시에라클럽이 비포장 구간의 환경 훼손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고, 그 합의에 따라 2011년 전 구간 포장이 완료됐다. 통행료는 기준 시점 성인 18달러, 어린이 8달러였다. 해발 11450피트 지점인 글렌코브에는 기상관측소가 있는데, 한여름에도 낮 최고기온이 평균 60도대(화씨) 초반에 머물고 밤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날도 드물지 않다. 도로는 눈이 감당되는 높이까지 연중 부분 개방되며, 완전 개방 여부는 그해 적설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뀐다.

직접 몰기 부담스럽다면 콕레일도 있다

대형 RV로 직접 오르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파익스피크 콕레일(Pikes Peak Cog Railway)이라는 대안도 있다. 매니토우스프링스에서 출발해 8.9마일 궤도를 따라 정상까지 오르는 열차로, 편도 약 75분이 걸린다. 왕복 전체 소요 시간은 3시간 남짓이고 정상에 머무는 시간은 약 45분으로 정해져 있다. 좁은 산길을 직접 운전할 필요가 없고 날씨나 브레이크 상태를 걱정할 이유도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다만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전망대마다 멈춰서 사진을 찍거나 일정을 유동적으로 조절하기는 어렵다. 트레일러를 산 아래 RV 파크에 세워두고 정상까지는 콕레일로 다녀오는 방식은, 규정상 트레일러 진입이 원천 금지된 이 도로에서 오히려 가장 스트레스 적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입장권은 별도로 예매해야 하고 성수기에는 매진되는 경우가 많아 여행 전 미리 예약해두는 편이 안전하다.

그래서 어떻게 가야 하나

결론부터 말하면 핍스휠(fifth wheel)이나 트래블 트레일러를 끌고 온 여행자는 이 길을 아예 일정에서 빼거나, 콜로라도스프링스 인근 RV 파크나 캠핑장에 트레일러를 세워두고 별도 차량으로 올라가야 한다. 모터홈으로 직접 오르려는 경우에도 전체 길이 24피트, 축거 19피트라는 두 숫자를 미리 실측해 확인하고, 자동변속기라면 레버에 저단 고정 표시가 있는지부터 점검하는 편이 안전하다. 19마일, 해발 14115피트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도로 자체보다 규정을 얼마나 꼼꼼히 확인하고 왔는지가 통행 여부를 가르는 진짜 관문이다.

트레일러를 어디에 세워둘지도 미리 정해야 한다. 콜로라도스프링스와 이웃한 마니토우스프링스 일대에는 RV 파크가 여럿 있어 하루 이틀 트레일러를 맡겨두고 견인 차량이나 렌터카로만 정상을 다녀오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트레일러를 아예 두고 갈 계획이 없다면 가든오브더갓츠(Garden of the Gods)처럼 트레일러를 매단 채로도 둘러볼 수 있는 주변 명소로 일정을 바꾸는 편이 낫다. 옷차림도 변수다. 산 아래 콜로라도스프링스가 한여름 화씨 80도를 넘나드는 날에도 해발 11450피트 글렌코브 인근은 한낮에도 60도 안팎에 머물고 해가 지면 40도 아래로 떨어진다. 반팔 차림으로 출발했다가 정상 부근에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흔하다.

사진 출처: Hyundai Motor Group — Pexels (https://www.pexels.com/photo/four-rally-cars-on-a-mountain-road-2707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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